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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Story

직장에서 팀원에게 해서는 안될 말들


예전 회사에서 팀원들끼리 워낙 친하다보니 농담도 많이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일좀 해'였다. 어떤 상황에서 나오냐하면......

A : (등 뒤에서 장난 걸며) 뭐해?
B : (인터넷 뒤적이며) 아, 원화에 필요한 자료를...
A : 아, 정말. 야한 사이트 찾고 있는거지? 일좀 해 일좀.

물론 A는 B가 업무에 필요한 일로 인터넷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장난을 친 것이고 B도 웃으면서, 혹은 맞장난을 치며 넘어간다. 이렇게 서로 친하고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걸 아는 상황이라면 별 상관 없겠으나 문제는 아무리 그런 경우라도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나도 멋모르고 친한 사이라고 생각되면 했던 말이 있었는데 어느날 그 말 그대로 돌려받았더니 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경우가 있었다(물론 철야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도 한 몫 했지만). 그래서 나름대로 '직장에서 팀원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일좀 해라.
-> 이 말 몇 번 듣다보면 '내가 정말 일 안 하는 놈인가?' 라고 스스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러는 넌 얼마나 일하는데?' 라는 식의 역공이 펼쳐지기도 한다. 아무튼 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되는 말.

2. 힘들 게 뭐 있냐. 그 일만 하면 되잖아.
-> 설령 그 업무를 완전히 꿰고 있는 사람이 한 말이라 하더라도 별로 기분 좋은 상황이 아닐진대,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말 하면 완전 무시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보통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항변하는 경우와 조용히 인정하는 경우다. 전자는 항변이 성공해 상대가 인정했다해도 기분이 좋지 않으며 후자는 자포자기한 상태이거나 섭섭함을 느끼는 경우다.

3. 또 사고쳤지?
-> 사고 일으키는 존재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정말 상대가 사고를 쳤어도 이 말은 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사고쳐서 미안해 죽겠는데 확인사살하듯 말을 해버리면 기가 팍 죽는다. 반대로 자기 문제가 아닌데 이런 말 들으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짜증나기 마련이다. '너는 사고 안 치나 두고보자' 라는 식이 될 수도 있다.

4. 그거 별로 안 어려우니까 금방 끝나잖아.
-> 2번과 비슷하긴 한데 이 말도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이 해도 별로 좋지 않다. 왜냐하면 저런 말 들은 후 금방 끝내봐야 당연한 일을 해버린 것 뿐이고, 반대로 오래걸리면 자기가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꼴이다. '너한텐 어려운 일 아니잖아?' 라는 식의 상대능력을 함부로 평가하려들면 곤란하다.

5. 알지도 못하면서
-> 팀원의 전문가적인 지식에 상처를 입히는 가장 직접적인 말이다. 팀원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 대해 식견과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설령 전혀 다른 분야에 대해 아는 척 하다가 들은 말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자괴감에 빠지거나 반대로 상대에게 이 말을 돌려줄 기회를 기다리는 경우로 나뉜다.

6. 명령어투
-> 명령 받는 거 좋아하는 사람 없다. 한국사람은 기질 때문에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게임회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이기 때문에 명령 받는 것에 대해 익숙치 않다. 그것이 비록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시킨 일이라도. 이럴 땐 청유형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해주실 수 있어요?' 라던가 '~해줄래요?' 혹은 '부탁 좀 할게요.' 등.

울 실장님은 두 번째(~ 해줄래요?), 팀장님은 세 번째(부탁 좀 할게요)를 잘 구사한다.

부록 : 힘이 나는 말..

부록으로 별 말 아닌 것 같은데 들으면 힘이 나는 말을 적어본다.

1. 역시 XX군(XX는 상대의 이름) 혹은 역시 대단해!
'역시'에 강세를 주는 걸 잊지 말자. 단, 너무 호들갑을 떨면 놀리는 걸로 보일 수 있으니 진짜 감탄한 듯한 표정과 어조로 해주는 게 중요하다.

실장 : 엑셀 파일 좀 정리해 줄래요?
야즈 : 이미 다 해놨습니다.
실장 : 역시 야즈군!
야즈 : 하핫. 제가 원래 빠르긴 하죠.

이런 부작용에 주의하자.

2. 네 덕분에 살았다
어려운 말 아니면서 상대 MP가 오르는 말 중 하나다. 보통 이 말을 들은 상대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기쁨에 뭔가 더 해줄 게 없나 살피게 된다.

3. 좋은데요. 괜찮군요. 혹은 센스가 있네요.
상대가 결과물을 갖고 왔을 때 하는 것이 적절한 타이밍. 만약 안 괜찮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땐 '전체적으로 좋긴 한데 이런 부분은 이렇게 좀 고쳐보면 더 좋을 것 같네요' 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상대가 충격 덜 먹는다.

센스가 좋다라고 하면 특히나 글픽디자이너들이 좋아한다(ㄴ을 ㄱ발음으로 하면 낭패)

4. 수고 많았어요.
흔한 말이지만 듣기 힘든 말이기도 하고 그만큼 효과 좋은 말이기도 하다. 별 생각 없이, 툭 던지듯이 하면 효과 0. 부사로 꾸며서 '진짜', '정말' 등을 첨가해서 약간 천천히 말해주자.

우리나라 사람이 잘 안 하는 말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칭찬하는 말'과 '사랑해'라는 것. 칭찬은 당사자가 없을 때 하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처럼 칭찬이 거의 없는 경우엔 바로 앞에서 해주는 게 더 즉효다(칭찬하는 법을 잘 모르겠으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대신 뒷다마는 절대 까면 안된다. 어떤 경로를 거쳐서든 반드시 당사자 귀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훨씬 부풀려져 들어간다는 것이다.

철야가 많은 이쪽 업계는 팀원들의 얼굴을 고등학교 때 야자할 때보다 더 오래 보게 된다. 간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말 몇 마디가 분위기를 훨씬 좋게 만들 수 있다. 대신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한 마디가 팀웍에 금이 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